인구감소 시대, 균형발전에서 ‘압축도시’로.
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면 지방도시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지방소멸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해법이 있다.
바로 균형발전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기업과 일자리,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지방의 산업을 육성하고, 도로와 철도 같은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이러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모든 지방도시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유지하는 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일까?
오히려 이제는 ‘모든 지역을 살리는 균형발전’에서 ‘살아남을 거점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압축도시 전략’으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도시의 문제는 ‘도시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지방도시의 쇠퇴를 이야기하면 흔히 산업시설이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조금 더 본질적으로 들여다보면 문제의 핵심은 인구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특히 청년층의 수도권 이동이 계속되면서 지방도시의 인구 감소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면 단순히 사람이 줄어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학교가 줄어들고,
병원이 줄어들고,
상점이 문을 닫고,
대중교통 이용자가 감소하고,
공공시설의 이용률이 떨어진다.
그리고 결국 도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1인당 사회적 비용은 오히려 증가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방도시를 모두 유지해야 할까?
여기서 조금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인구 10만 명의 도시가 5만 명이 되고, 다시 2만 명이 되었을 때에도 우리는 같은 규모의 도시 인프라를 계속 유지해야 할까?
도로는 계속 관리해야 한다.
상하수도도 유지해야 한다.
공원과 녹지도 관리해야 한다.
공공청사와 문화시설도 필요하다.
버스 노선도 운영해야 한다.
학교와 의료시설도 유지해야 한다.
문제는 이 모든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은 계속 줄어든다는 것이다.
결국 지방소멸 문제는 단순한 도시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줄어드는 인구를 어떤 공간에 모아 효율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라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균형발전은 ‘분산’에 가까웠다
우리나라의 균형발전 정책은 기본적으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추진되어 왔다.
기업 이전,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산업단지,
광역교통망,
지역 거점 개발 등이 대표적인 정책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데 일정 부분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인구감소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기존 방식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
인구가 증가하는 시대에는 여러 지역에 도시를 확장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에는 도시를 계속 분산시키는 것이 오히려 도시 유지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드는데 도시를 계속 넓히는 것이 맞을까?
도시의 면적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한번 만들어진 도로는 계속 관리해야 하고,
한번 설치된 상하수도 시설도 유지해야 한다.
새로운 택지가 개발되면 도로와 공원, 주차장, 학교, 생활편의시설 등 다양한 도시 인프라가 함께 필요하다.
그런데 인구가 감소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은 줄어드는데 도시가 유지해야 하는 공간은 그대로 남는다.
이것이 지방도시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도시정책은
“어떻게 더 많이 개발할 것인가?”
보다
“어디에 집중해서 도시를 유지할 것인가?”
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압축도시’다
이런 관점에서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향으로 압축도시(Compact City) 전략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본다.
압축도시는 단순히 건물을 높게 짓자는 의미가 아니다.
핵심은 사람과 생활서비스를 일정한 거점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지방권역 안에 여러 개의 작은 도시와 마을이 있다면,
모든 지역에 동일한 수준의 생활SOC와 기반시설을 유지하는 대신,
교통·의료·교육·상업·문화·일자리 등이 집약된 하나의 거점도시를 육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 지역의 주민들이 그 거점도시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사람을 옮기는 정책’도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더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지역정책은 주로
“기업을 지방으로 보내자.”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보내자.”
“시설을 지방에 만들자.”
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도시로 이동하도록 지원하자.”
라는 정책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강제적인 이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구감소지역의 주민들이 거점도시로 이동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충분한 주거·일자리·생활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주에 필요한 비용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거 이전 지원,
공공임대주택,
생활SOC 확충,
의료·교육 서비스,
교통서비스,
일자리 연계,
지역공동체 지원 등을 패키지로 제공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전 비용’과 ‘유지 비용’의 비교다
물론 이런 정책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사람이 이주하려면 주거비가 필요하고,
생활기반시설을 새롭게 정비해야 하며,
기존 지역의 토지와 건축물을 정리하는 비용도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번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거점도시로 이동시키는 데 들어가는 일회성 비용과,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지역의 도로·상하수도·공원·공공시설 등을 수십 년 동안 유지하는 비용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지방소멸 문제를 바라볼 때 바로 이 ‘사회적 비용’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구가 1만 명인 지역과 1천 명인 지역에 동일한 수준의 도시 인프라를 유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단순히
“지역을 지켜야 한다.”
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가장 적은 사회적 비용으로 유지할 것인가?”
를 고민해야 한다.
사람이 떠난 공간은 다시 자연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빠져나간 지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공간을 새로운 개발사업으로 채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연으로 돌려놓는 것도 하나의 도시정책이 될 수 있다.
주거지가 필요하지 않게 된 지역은 산림이나 녹지로 복원하고,
농업에 적합한 지역은 농지로 활용하고,
하천과 생태축은 자연환경으로 복원하고,
일부 지역은 산림·생태·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즉,
도시 → 도시
라는 기존의 개발 논리에서 벗어나
도시 → 자연
으로 전환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지방도시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압축도시 전략은 지방도시를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살릴 수 있는 도시를 제대로 살리자는 것이다.
모든 지역에 조금씩 예산을 나누어 투입하는 방식보다,
성장 가능성과 생활권 중심성을 갖춘 거점도시에
일자리,
교통,
의료,
교육,
문화,
주거,
생활서비스를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까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것이다.
균형발전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균형발전을
“모든 지역에 비슷한 수준의 시설과 투자를 제공하는 것”
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인구감소 시대에는 다른 방식의 균형발전이 필요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균형발전은
“모든 지역을 똑같이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어디에 살든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생활권을 재편하는 것”
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행정구역을 넘어선 광역 생활권과 지역 거점도시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도시의 미래는 ‘확장’보다 ‘선택’에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계획은 오랫동안
인구 증가 → 주택 공급 → 택지 개발 → 도시 확장
이라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인구 감소 → 주택 수요 감소 → 빈집 증가 → 생활서비스 감소 → 도시 축소
라는 새로운 도시의 사이클이 시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도시계획도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식으로 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남길 것인지,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
어디를 축소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공간을 자연으로 되돌릴 것인지
를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앞으로 도시계획이 마주하게 될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빌드업 인사이트
분산의 도시에서 압축의 도시로, 그리고 커뮤니티
도시계획의 역사를 돌아보면 도시가 직면한 문제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도시’의 모습도 계속 달라져 왔다.
산업혁명 이후 급격하게 성장한 대도시가 과밀과 열악한 주거환경이라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에베네저 하워드(Ebenezer Howard)**는 도시와 농촌의 장점을 결합한 전원도시(Garden City)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워드가 생각한 전원도시는 단순히 녹지가 많은 저밀도 도시가 아니었다.
적정한 규모의 도시 안에서 주거와 일자리, 생활서비스를 갖추고 도시 주변에는 농지와 녹지를 보전한다. 하나의 도시가 계속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규모에 도달하면 또 다른 전원도시를 만들고, 각각의 도시를 교통으로 연결한다.
그 중심에는 ‘공동체’라는 가치가 있었다.
도시는 단순히 건물과 도로가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공간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후 전원도시 운동과 근린주구 계획에서도 이어졌다.

※ 에베네제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 (THE Three Magnets)과 영국의 전원도시 Welwyn
클래런스 페리(Clarence Perry)의 근린주구(Neighborhood Unit)에서는 초등학교와 커뮤니티 시설을 생활권의 중심에 배치하고,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원과 생활시설을 보행권 안에 두었다.
결국 근대 도시계획에서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건물이나 도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가 형성되는 생활권과 커뮤니티였다고 볼 수도 있다.
반면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다른 방향에서 도시문제에 접근했다.
그는 전통도시의 복잡하고 불규칙한 공간구조를 비효율적으로 보았고, 도시를 보다 합리적이고 기능적으로 재편하고자 했다.
건축물을 고층화하고 도시기능을 집약하여 토지의 상당 부분을 공원과 녹지, 오픈스페이스로 확보한다.
사람과 기능은 집약하고, 그 결과 확보되는 공간은 도시 구성원이 공유한다.

※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 모형
물론 하워드의 전원도시를 오늘날의 ‘분산도시’와 동일하게 볼 수 없고,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를 오늘날의 ‘압축도시’와 동일하게 볼 수도 없다.
두 이론은 서로 다른 시대의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계획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제시한 서로 다른 공간적 접근은 인구감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도시문제를 ‘분산’으로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집약’으로 해결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가 성장하던 시대의 우리나라 도시정책은 상대적으로 분산에 가까웠다.
대도시의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신도시를 만들었고, 수도권의 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하기 위해 혁신도시와 산업단지를 조성했으며, 새로운 도로와 철도를 건설하면서 도시와 생활권을 계속 확장해 왔다.
하지만 이제 그 전제가 달라지고 있다.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도시계획의 방향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도시와 기반시설을 계속 만들어 기능을 분산시키기보다 사람이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거점을 선택하고, 그곳에 주거·일자리·의료·교육·상업·문화·교통을 집약하는 방식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도시를 압축하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커뮤니티’는 약해지는 것일까?
과거의 커뮤니티는 상당 부분 물리적 공간에 의존했다.
동네길에서 이웃을 만나고, 학교에서 아이와 부모가 만나고, 시장과 광장과 공원에서 주민들이 관계를 형성했다.
그래서 도시계획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관계를 맺는 방식은 이미 크게 달라졌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가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반드시 같은 동네에 살지 않더라도 관심사와 직업, 취미와 가치관을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한다.
과거의 커뮤니티가 주로 ‘가까이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였다면, 오늘날의 커뮤니티는 ‘연결된 사람들의 공동체’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물리적 커뮤니티가 필요 없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인구가 감소하는 도시에서는 온라인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관계와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는 공간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도시계획의 과제가 될 수 있다.
사람과 도시기능을 거점에 집약하되 그 안에 광장, 공원, 보행공간, 문화시설과 같은 공유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관계가 실제 도시공간에서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압축도시는 단순히 효율을 위해 사람을 한곳에 모으는 도시가 아니라,
적은 인구로도 더 많은 사람과 서비스와 관계를 만날 수 있는 도시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인구감소 시대에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압축도시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100여 년 전 하워드와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들이 살던 시대의 도시문제에 서로 다른 해답을 제시했다.
하워드가 자연과 도시, 그리고 공동체의 관계를 고민했다면, 르 코르뷔지에는 도시기능을 집약하고 그로 인해 확보되는 공간을 어떻게 시민에게 돌려줄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두 사람이 경험하지 못했던 인구감소와 디지털 네트워크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르 코르뷔지에의 ‘집약’에 하워드의 ‘공동체’를 담는 도시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과 도시기능은 보다 작은 공간에 모으고,
그 안에서는 사람들이 만나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공공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며,
더 이상 도시로 유지할 필요가 없는 공간은 농지와 산림, 녹지와 생태공간으로 다시 자연에 돌려주는 것이다.
어쩌면 인구감소 시대의 도시계획은 도시를 어떻게 더 크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도시를 얼마나 잘 줄이면서도 사람들의 관계와 삶의 질을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계획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에도 우리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도시를 계속 유지해야 할까?
아니면,
도시기능은 보다 압축하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작고 강한 도시’를 만들어야 할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구감소 시대의 지방도시는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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